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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를 속이기 위한 마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칼럼
작성자
 그냥박영균
작성일
2022-05-30 01:33
조회
4428
※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하기가 너무 싫네요. 자기 전에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해봅니다.

 

많은 마술인들이 "다른 마술사들을 속일 수 있는 마술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 증거로 많은 마술인들이 다른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어려운 기술을 연습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셀프워킹 트릭을 연구한다.

새로운 마술을 만드는 마술 크리에이터 PH님의 인기 역시 그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마술인들이 마술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

마술인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마술이 탄생하고, 그 중에서 훌륭한 작품이 태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마술의 목적은 비마술인들에게 신기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마술인들은 그 사실을 잊고, 마술이라는 장르를

마치 상대방을 속이지 못하는 쪽이 패배하는, 능력자 배틀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윽... 저 녀석 언제 새로운 셀프워킹을 배워왔지?"

"안되겠어. 이쪽에서는 DPS로 승부를 보자!"

마술인들을 속일 수 없는 마술은 가치가 없는 마술일까?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하는 마술사는 실력이 낮은 마술사일까?

나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 증거 중 하나는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하는 마술 중에서도 훌륭한 마술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레드 핫 마마(혹은 시카고 오프너)다.

이 마술은 난이도는 쉽지만 효과는 강력한 대표적인 명작 카드 마술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렉쳐노트에서 나온 클래식 콜렉션이라는 렉쳐의 가장 첫 번째 마술이며,

데럴의 렉쳐에서도, 마이클 아머의 렉쳐에서도 레드 핫 마마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마술인들이 레드 핫 마마를 한 번쯤은 공부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이 명작 마술은 마술인들 사이에서는 기피된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마술 모임에 나가서 레드 핫 마마를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다들 형식적인 리액션을 보여주고 다음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레드 핫 마마는 마술인들을 속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쁜 마술'인가?

몇 분 동안 카드를 세고 섞고 나누는 저 셀프워킹 마술이 더 '좋은 마술'일까?

 

마술인들은 자신을 속인 마술을 더 좋은 마술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판단은 관객이 자신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관객은 우리 마술인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관객 입장에서 좋은 마술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내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있다.

만약 당신이 관객에게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당신이 마술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다른 마술인을 속이기 위함이라면,

방금 읽은 내용은 전부 잊어버려도 된다.

비마술인 관객 없이 마술이라는 장르가 성립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 데이비스 스톤의 CLOSE-UP 이라는 책 속에는

"마술사를 속이기 위한 마술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챕터가 있다.

해당 챕터가 빈 페이지뿐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전체 20

  • 2022-06-01 08:59

    몇 분 동안 카드를 세고 섞고 나누는 저 셀프워킹 마술이 더 '좋은 마술'일까? 이 대목이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연출 영상을 보곤 너무 신기해하며 구매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세련되지 않은 방식이라고 처음의 감동을 잊고 저평가하는 그런 것들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결국은 관객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022-06-01 20:07

      마술도구를 사기 전의 감동을 기억해놓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 2022-05-30 05:18

    저도 마술사를 속이는데에만 집중되어있는 마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술사를 속이며 깔끔하게 끝나면 좋은데 자칫하면 마술이 아니라 퍼즐이 되기 때문에...


    • 2022-05-30 11:40

      예전에는 마술을 퍼즐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속이는 걸 제외한 다른 부분이 보이지 않았었죠.


  • 2022-05-30 07:21

    와우..너머 좋은글이네요...


    • 2022-05-30 11:38

      고맙습니다 ㅎㅎ


  • 2022-05-30 08:26

    저는 애초에 마술하는 사람에게 마술 보여주는 자체를 안 좋아합니다. 그걸 보는 입장에서도 마술로 볼 수가 있을까요?


    • 2022-05-30 11:43

      제 경우에는 다른 마술인들을 속여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잘 안해요. "너희도 다 아는 마술이겠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붙여서 진행해." 정도로 생각한답니다.


  • 2023-12-17 22:33

    마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되었네요


  • 2022-06-03 17:39

    좋은 마술이 너무 유명햐지면 관객들도 결말을 유추하더라구요 ㅠㅜ 영균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2022-06-03 17:47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고 재미가 없어지는 영화도 있지만, 어떤 영화들은 결말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영화를 다시 보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 영화를 안 본 친구랑 같이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럼 그 친구의 반응을 보는 게 즐겁더라고요. 내가 느낀 감동을 그 친구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술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알고 있는 걸 잊어버리게 만들 수는 없으니,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이 다시 봤을 때도 재미있는 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말을 알고있다고 마술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마치 엔드게임 2회차를 보러가서 쉴 새없이 스포일러를 쏟아내는 사람과 비슷한 종류의 민폐라고 생각합니다.


  • 2022-06-03 21:35

    저도 공감해요! 레드핫마마 와 같이 효과가 정말 좋은 마술이지만! 마술계 안에서는 취급 받지 못하죠ㅎㅎ
    마술계에서는 같은 마술이더라도 변화를 줄 수 있는 마술들이 더 인기가 많더라구요 (카드 샌드위치, 아칸, 체인지 등등)
    마술사를 속이기 위한 마술이 마술계에 한단계 성장을 주지만,
    그것에 매몰되면 마술만을 위한 마술이 되어버리기도 하죠. (그 또한 마술의 한 장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ㅎㅎ)
    시험 기간인데도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01-05 19:07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3-01-23 13:12

    마술의 목적은 비마술인들에게 신기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마술사들도 마술 보는거 좋아하고 신기한 마술 보는건 더 좋아할겁니다
    후지 아키라는 예전에 관객이 마술인이건 비 마술인이건 좋은 마술사라면 찾아온 관객을 만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마술사들에게 인정받는 마술사들의 모습을 실제로 봤을 때 굉장히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글 자체는 마술인들을 속이려는 것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서인지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저는 마술사를 위한 (마술사를 속이기 위한) 마술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마술 컨벤션에 가서 게스트들의 공연을 보면 자주 속아 넘어가고는 하는데 굉장히 즐거운 경험입니다
    마술의 목적은 (마술인이던 비마술인이던 상관없이 누구나에게) 신기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가 더 정확한 것 같아요


  • 2022-05-30 16:24

    와.. 이런글 어떻게 쓰는거지?


    • 2022-05-30 18:23

      마술 6년하고 복학생이어도 신입생에게 말걸고 마술동아리 회장 한번에다가 준표님 편집자면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 2022-05-30 20:42

      칭찬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가 마술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글 쓰는게 익숙해졌네요


  • 2024-02-11 21:45

    좋타


  • 2022-05-31 17:51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2022-05-31 19:46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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