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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에게 마술 배운 썰

칼럼
작성자
 자축인묘진샤오미배터리충전좀제때제때하자
작성일
2022-06-03 20:28
조회
2316
시험 기간이 아니면 이런 칼럼 못 쓸 거 같아요.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사람이라서요.

 

 

저는 전 여친에게 훌륭한 마술 하나를 배웠어요.

덕분에 전 멋있는 마술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 친구과의 일화를 하나 이야기 해드릴게요.

 

 

전 여친이자 제 첫사랑이기도 한 PEJ양(이하 P)과 저는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만 첫 연애였죠. P은 연애경험이 많아 저를 종종 이끌어 주었습니다.

배려도 제가 알게 모르게 많이 해주었구요. 그 점에 반해버렸던 거 같아요.

 

 

사귀는 연인이 언제나 그렇듯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데이트하던 어느 날, P이 카톡으로 말하더군요.

자기 집 근처에 좋아하는 스시 집이 하나 있는데 같이 가자구요.

가게 이름은 ‘다리쿠’였어요. 가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제가 먼저 오늘은 ‘다리쿠’갈까? 권하면서 데이트 장소로도 종종 즐겼죠.

사장님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구요.

 

 

하지만 사귀는 연인이 흔히 그렇듯, 다투기도 많이 다퉜습니다.

연애 경험이 부족했던 저는 먼저 사과할 줄 몰랐습니다. 몰랐다기 보다는 서툴렀다고 보는 편이 맞겠네요.

그런 저를 위해 P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먹는 걸 참 좋아하던 그 친구, 같이 ‘다리쿠’가서 초밥 뿌시자며 화해의 신호를 보냈죠.

먹을 때 행복해하던 그 친구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네요.

 

 

하지만 연애경험이 부족한 저에게 질렸던 걸까요, 지쳤던 걸까요.

저희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어느 날, 문득 P이 떠올랐습니다.

자연히 그 친구가 좋아하던 스시집 ‘다리쿠’도 같이 생각났어요.

저는 홀린 듯이 외출 준비를 하고 오늘 점심은 그 식당에서 해결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솔직히 ‘어쩌면 혹시...?’ 하고 재회하고픈 마음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식당 앞에 도착한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초밥집 ‘다리쿠’는 없고 웬 카페가 하나 들어섰더군요.

근처 사시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분을 한 분 붙잡고 가게 ‘다리쿠’의 행방을 아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리쿠’가 뭔데? 였습니다.

살짝 당황한 저는 초밥집이라고 찬찬히 설명을 드렸죠.

그제서야 주민 분은 이내 아는 척을 하시면서 “아~ 말하는겨?”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 저는 네이버에서 10분동안 검색만 했습니다.

P과의 카톡 기록도 한참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죠.

P이 저를 배려해준 거라는 걸.

P도 처음에는 라고 올바르게 말했지만

제가 라고 잘못 말한 시점부터는 그 친구도 잘못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 P은 언제나 말을 할 때도 카톡에서도 가 아닌 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위해 가게 이름을 ‘일부러’ 잘못 말하고 있었어요.

제가 민망해 할까봐 일부러 지적하지 않았던 거죠.

 

 

그 친구는 배려심으로 저를 반하게 만들더니,

헤어지고서도 그 특유의 배려심으로 저를 다시 한 번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전여친과의 일화입니다.

이게 무슨 마술이냐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전 이것 덕분에 좋은 마술 이론 하나를 얻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잘 아실 테지만 여성 관객 중에는 간혹 문양 이름을 잘못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스페이‘드’를 스페이‘스’로 발음한다던지, 클로버를 아예 ‘플라워’라고 한다던지요.

 

 

지금와서는 부끄럽지만 옛날엔 잘못 말했다고 정정해주었습니다.

하지만 P과의 일화 이후로 저는 이제 정정하지 않습니다.

관객이 “10 스페이스”라고 말한다면 저 역시도 “생각하신 카드, 10 스페이스입니다!” 라고 말을 하게 되었죠.

 

 

멋있는 마술이 멀리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P이 저를 사랑해주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관객을 사랑해 준다면 멋있는 마술이 되는 거였죠.

 

 

후안 타마리즈가 늘 말하잖아요. 관객을 사랑하라고.

타마리즈의 제자였던 다니 다올티즈 역시 말합니다. 기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관객을 신경써라.

 

 

앞으로 여러분도 카드나 동전 쪼물딱대기 전에 관객을 조금만 배려해주면 어떨까요?

 

 

만약 여러분이 관객 눈 속이기에만 급급하다면 관객들은 마술은 사기,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마치 저와 전 여친 P과의 일화처럼요.

왜냐하면 전여친의 약자 PEJ폰은정의 약자이고,

스시집 ‘다라쿠를 거꾸로 하면 ‘쿠라다’ -> ‘구라다’ -> 네 바로 ‘구라이기 때문이죠.

 

 

대신 여러분도 관객을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이 하는 마술 역시 사랑스럽게 보일겁니다.

 

 

제 긴 칼럼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한가한 방학 보다는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시험기간에 뵙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봐요 안녕~
전체 16

  • 2022-06-03 23:46

    글이 재밌네요 ㅋㅋㅋ


  • 2023-12-17 22:28

    좋은 글이네요!


  • 2023-07-04 19:30

    찟었다 ㅎㄷㄷ


  • 2022-06-03 21:40

    맞아요ㅎㅎ 다시 한번 마술을 하는 목적을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ㅎㅎ 감사합니다!


  • 2022-06-04 01:08

    정성추


  • 2022-06-04 11:47

    재밌네요


  • 2022-06-05 11:22

    뼛속까지 마술사 ㄷㄷ


  • 2022-06-05 20:04

    ㅋㅋㅋㅋ


  • 2022-06-05 21:03

    마술에 지배당하셨군요 ㄷㄷ


  • 2022-06-05 21:31

    와ㄷㄷ 구라다;; 저도 정성추 하나 박고 갑니다


  • 2022-06-05 23:25

    와ㄷㄷ 초반 빌드업부터 엔딩, 내용까지 그냥 찢었다...ㄷ


  • 2022-06-06 21:41

    와 복선 지린다 ㄷㄷ…


    • 2022-06-06 21:41

      정성추 드립니다


  • 2024-02-11 21: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7-31 02:05

    하하ㅋㅋㅋ 많은걸 배워갑니다


  • 2022-06-04 18:44

    시험기간에 에타에 올라올법한 글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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