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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커 트릭을 이해하고 있는가

칼럼
작성자
 슈슈슈
작성일
2024-04-10 02:07
조회
246
마술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서커 트릭이라는 것을 들어보게 됩니다.

이름(sucker)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마술사가 실수하거나 마술을 엉성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루틴의 클라이맥스에서

큰 반전을 연출하는 마술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아래 영상이 그 전형적인 예를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굉장히 보편적인 개념이니까요.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적에서도 배울 수 있고, 프로로 활동하는 마술사들도 종종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걸 잘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커 트릭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어려움이라는 단어는 내 손의 힘듦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술을 그 구성요소별로 하나하나 나눈다면 '해법' 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극히 작은 일부라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말입니다.

문제는, 서커 트릭은 트릭이라기보다 하나의 플롯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트릭과 연출이 이미 결합되어 분리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루틴의 핵심적인 부분,

즉 '실수' 만큼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 실수라는 것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클로즈업이라는 장르의 특성 덕분입니다.

관객들은 스테이지 마술에서 '완벽' 을 기대합니다.

스테이지에서 마술사와 관객은 대부분의 경우 분리된 대상입니다.

마술사의 실수는 말 그대로 'NG' 이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클로즈업에서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서커 트릭은 그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닙니다.

기존의 마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정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좋은 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마술사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개성(Personality)입니다.

마술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든, 원하는 성격의 가면을 쓰든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른 개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관객과 허허실실하고 어딘가 어설픈 캐릭터를 가졌다면 서커 트릭은 좋은 무기일 것입니다.

만약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연출 자체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이 연출합니다.

관객분이 고른 카드가 모두 빨간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여기 검은색 카드도 있는데요?

어?

(잠깐의 정적)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저는 항상 주머니에 카드를 넣어둡니다!

짜잔!(박수)


여기서 문제는 실수가 전혀 실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술을 하다가 정말로 예상 외의 변수를 맞닥뜨렸을 경우와 실수를 연기하는 경우의 갭이 너무 큰 마술사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관객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마술을 몇 번 보다 보면 다른 마술사가

어?

하는 걸 듣기만 해도 뒤에 반전이 있겠구나 하는 예상은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예상 밖의 상황이라는 인식을 관객에게 주면 해결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위에 있는 (잠깐의 정적) 동안 관객은 불안을 느낍니다.

마술사가 정말로 실수했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불안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는 관객과 마술사 사이에 라포르(rapport)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관객의 이런 걱정과 반대로 마술사가 사실 이런 상황을 유도했다면?

관객은 신기함이나 놀라움보다 배신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서커 트릭은 상당히 미묘한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실수했음을 의심하지는 않으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이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커 트릭을 너무 간단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커 트릭은 결국 하나의 '플롯' 입니다.

관객이 신기해하는 것은 3번 정도에 불과합니다.

카드 온 더 박스를 열 번쯤 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마술을 보지 않고 박스만 바라볼 것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이 실수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게 될 뿐더러 매번 실수를 연발하는 마술사는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커 트릭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말만은 하고 싶습니다.

마술에 있어서 연출은 경시할만한 사항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출이 사실상 마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서커 트릭은 그 '연출' 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난이도를 지닌 마술입니다.

마술의 난이도를 생각할 때, 패스를 몇 번 하고 팜을 몇 장 하고 컬로 몇 장 빼고 하는 것들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이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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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1 12:41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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