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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The Impossible and The Improbable)

칼럼
작성자
 TotalEsNueve
작성일
2023-01-25 16:56
조회
1191
불가능한 것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

(The Impossible and The Improbable)

0.

이 글은, 몇 년 전 타계한 스페인의 마술사 Ramón Riobóo의 책 <Second Thoughts>에 실린 에세이 “Difficult, Improbable and Impossible(pp. 271-276)”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필자의 생각과 예시들을 부분 부분 덧댄 것입니다. <Second Thoughts>에는 아주 흥미로운 에세이들과 마술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Card magic using the brain, with hands involved(머리를 쓰는 카드 마술, 손기술이 약간 첨가된)”이라는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똑똑한 원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카드 마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1.

마술사의 마술은 보여지는 난이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객이 보기에 저 마술사가 하는 마술이 어려워 보였다면, 그것은 아마 두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①관객이 어느 정도 마술에 대한 식견이 있다, ②마술사가 기술을 쓰면서 어딘가 버거워 보였다. ①번 상황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②번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마술사의 마술은 ‘어려워 보일’ 것이 아니라 ‘신기해 보여야’ 한다. 마술사는 저글러나 곡예사와는 달라서, 공연 후에 관객이 ‘어려워 보인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썩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술사가 실제로 난이도 있는 기술을 하더라도, 그것이 관객에게 느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아르카나 베스트 칼럼에 있는 아스카니오의 In-Transit Action에 대한 글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마술을 할 때 난이도의 문제보다는 신기함의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기함’을 유발할 것인가? 현대의 마술에는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는 듯하다. ①첫 번째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 다시 말해 아주 낮은 확률의 목표를 성공시키는 것이고, ②두 번째는 정말로 불가능한 것, 다시 말해 일반적인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Ramón Riobóo는 이 둘을 구별해서 접근할 필요성을 말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improbable)은, 확률적인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까울 뿐, 0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카드 7장을 들고 있고, 그 중에 하나를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해 보자. 그리고 마술사는 관객이 선택한 카드를 맞춘다. 관객은 신기해할 것이다. 어쨌거나 마술사가 자신의 카드를 맞췄으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마술은 충분히 ‘일어날 법한’ 현상이다. 트릭 하나 없이, 찍기만 잘 해도, 1/7의 확률로 이 현상은 일어날 수 있다. 이 마술이 좀 더 ‘불가능한 것’에 가까워지려면, 이 현상을 반복하면 된다. 1/7의 확률을 5번쯤 연속으로 성공시킨다면 사람들은 더욱 신기해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것을 예언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Ramón Riobóo은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고 있다. 자신이 길을 가다가 복권을 산다. 그리고 1등에 당첨된다. 이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일 복권을 사면 당신은 1등에 당첨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해 줬다고 하자. 그리고 다음날 복권을 샀더니, 실제로 1등에 당첨이 되었다면, 이것은 아주 신기한 일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절대로 0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이것이 확률 게임을 마술로 포장하는 방법이다.

불가능한 것(impossible)은,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갑자기 물건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든지, 아니면 물건이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뜬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날 확률은 0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것’은 우리가 앞서 말한 ‘불가능해 보이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고, 관객들의 시선을 더 쉽게 사로잡을 수 있으나, 그만큼 단점도 강하다. 저것이 명백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로 빠르게 넘어간다. 놀라움의 감정은 금방 사라지고, 사람들은 트릭 찾기에 집중하게 된다. 불가능한 것은 굳이 마술로 포장할 필요가 없지만, 사람들의 의심에는 더 취약하다. 불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논리로 해결책을 만들고, 눈앞에서 벌어진 마술 대신에 자신의 논리를 믿어 버린다. 이 경우에는 신기함이라는 감정이 생기기가 매우 어렵다.

3.

관객들은 그들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현상의 가능성 정도를 판단한다. 인비지블 쓰레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공중부양 현상을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비지블 쓰레드가 사용되지 않은 공중부양이었더라도,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을 것이다. 저 관객에게 신기함을 주려면, 이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관객의 지식과 경험 수준은 관객마다 다르다. 완벽하게 동질적인 집단의 관객 그룹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마술사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조건의 부여’로 일정 부분 해결 가능한 듯하다. 마술사가 관객에게 이 마술의 불가능함을 지속적으로 인지시키는 것이다. 카드 투 포켓이라는 마술을 한다 치면, 마술사는 자신의 주머니가 비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또 자신이 카드를 (거의) 만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술사는 불가능을 위해 자신이 부여한 무대 위의 조건들을 관객들에게 아주 천천히, 분명하게, 하나씩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즉석에서 부여된(사실, 정말로 즉석에서 부여된 것은 아니다 즉석에서 부여된 것처럼 설계된 것이다) 조건들을 관객들이 인정하고, 그 조건들이 조합되면서 불가능성이 완성되는 과정을 관객들이 따라올 수 있게 만들 수만 있다면, 마술사는 관객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제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객들이 무대 바깥에서 쌓아 온 경험과 지식들을 이용할 수 없게, 무대에서 0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마술사의 패터는 이러한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패터는 관객들을 웃기려고 짜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을 안내하기 위한 기능이 먼저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인비지블 쓰레드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마술보다 인비지블 쓰레드를 믿는 관객에게 신기함을 주는 방법은, '다른 증거'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공중부양 마술사들이 으레 쓰는 커다란 링 같은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술사들은 공중부양된 물체의 주변으로 링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관객의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실들을 모조리 끊어 버린다. 실을 상상하는 위치마다 링이 지나간다. 관객은 점점 포기하게 되고, 결국은 마술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우리가 이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이것은 관객이 무대 바깥에서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무대 바깥에서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을 그 자리에서 망가뜨려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이라는 아주 이성적인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4.

필자의 생각으로는, 불가능으로 향하는 조건을 쌓는 것보다는 0으로 다가가는 확률을 쌓는 것이 조금 더 편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 감동의 크기는 조금 약할 것이다. 반면 불가능으로 향하는 조건을 쌓는 구성은, 잘 만들기는 아주 어렵겠지만, 잘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큰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확률은 우리 모두가 무대의 안팎에서 공유하는 지식이지만,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 조건과 상황들은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너무나 이성적이다. 지나치게 불가능한 현상은 반발심만 일으킬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Ramón Riobóo의 말처럼, 현상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인지 먼저 판단해 보고, 이를 적절히 섞어 관객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마술이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이라 말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현대의 마술은 그 어떤 예술 분야보다도 이성적인 분야이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보다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전체 8

  • 2024-02-11 16:47

    넘모 좋다


  • 2023-01-25 17:16

    평소 하고있는 마술이 확률게임인지 정말 불가능한 현상인지 나누어서 생각해 보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3-01-25 17:36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3-01-25 17:37

      저는 엄준혁님라이브렉쳐에 나오는 마지막 마술(관객이 고른카드랑 같은 숫자 4장찾기) 같은 마술은 마술사가 기술을 쓰는데 어려워보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있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 2023-01-25 20:23

    ㄴㅇㄱ


  • 2023-01-26 07:05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3-01-28 03:33

    마술 중에서도 특히 멘탈쪽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깊게 고민해야하는 주제군요


  • 2023-09-10 08:50

    깊게 생각해보게 도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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